[Wine Maker] Azienda Agricola Foradori 방문기
Foradori를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날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Dolomiti의 서쪽 끝자락인 Alto Adige의 Mezzolombardo 지역으로 향하면서 '수확이 걱정되는데?' 하는 오지랖 상상을 펼치기도 했다. 도착해 보니 이제 막 발효시작을 마치고 압착기와 줄기제거기 등을 세척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막내딸인 Myrtha가 접객시작. 한 팀이 조금 늦어 와이너리에서 수확한 사과와 커피한잔을 대접받으며, 함께 투어에 참석한 다른 커플들과 수다를 나눴다. 한 커플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왔고, 다른 커플은 영국 런던에서 왔다고 한다. 늦은 팀은 아주 어린 아기와 함께 나타난 독일인 부부.
처음에는 포도밭을 둘러봤다. 더블 페르골라 (이 나라 말로는, Pergola가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 때문에, Pergola Trentino Doppia라고 하는 것 같다. 아마 같은 모양의 트레이닝을 Valpolicella에서는 Pergola Veronese라고 부르는 듯하다.) 시스템이 적용된 포도밭을 보여주면서, 계곡의 특성상 습할 때는 땅에서 포도가 높게 형성되면서도 캐노피의 Rot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에 영향을 최소한으로 주는 방식이라 한다. 해가 너무 뜨거울 때는, 포도가 타는 것을 캐노피가 보호해준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포도나무 열이 상당히 넓고 사이사이 농작물들을 기르고 있다는 점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을 증가시켜 주고 커버크롭으로써 역할도 한다 하더라.
2024년은 우리가 방문했던 날처럼 수확시기 전후로 비가 아주 많이 왔고, 이로 인해 Rot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장 고품질의 라벨인 'Granata'는 생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Kim : 이런 습한 해에 Rot가 생길 텐데, 너희는 어떻게 대처하니?
Myrtha : 황, 구리 스프레이 써야지. 근데 최소한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야
Kim : 그럼 와인 만들 때 황 첨가는?
Myrtha : 와인이 만들어질 때는 황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병입시에만 조금 넣고 있어. 빈티지의 상황에 따라 병입 시 넣는 황의 양은 조절하고 있어
Kim : 혹시, 내수용과 수출용 와인의 병입 시 황 첨가량을 다르게 하니?
Myrtha : 아니. 그런 구분은 없어
이후 셀러에 내려가봤다. 정말 다양한 양식의 발효 및 숙성 용기가 있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암포라를 시작으로, 커다란 보띠, 작은 오크통, 밤나무와 아카시아나무 배럴, 시멘트 탱크... 다른 생산자에겐 흔한 용기지만 Foradori에는 New Oak는 없었다.
숙성고 한쪽으로는 오래된 바틀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Granato의 올드 바틀들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날 셀러에 껍질과 함께 탁하게 발효 및 숙성하고 있는 Nosiola를 보고 인지부조화가 오기 시작했다. Nosiola는 이 집의 화이트와인 품종으로, 한국에서 정말 맛있게 마셨고 6-8개월의 껍질접촉에도 색이 투명하고 맑은 것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마신 투명하고 밝은 레몬색 와인은 어디서 온 걸까?
두 번째 셀러에서는 정말 많은 양의 암포라들이 모여있었고, 직원들이 일종의 왁스 같은 재질로 실링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암포라가 있는데, 안쪽이 반짝반짝 주석산 결정으로 보이는 물질에 코팅된 모습이 참 이뻐 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암포라는 깨지지 않는 한 반영구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간단한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테이스팅 세션으로 넘어갔다. 참석한 그룹 중 우리만 Foradori 와인을 심층적으로 테이스팅 하는 세션을 선택해서 따로 룸을 배정받았다. 그런데, 원래 테이스팅을 이끌기로 했던 둘째 아들 Theo가 몸이 안 좋아서 Elisabetta가 대신 나온다는 것이 아닌가... 본업이 의사인지라 Theo의 컨디션 난조에 기뻐하면 안 되지만, 순간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던 것은 사실이다.
Elisabetta가 시음실로 들어오는데 구글에서 보던 걸크러쉬 넘치는 모습에서 정말 정겨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Elisabetta는 셋이 앉아 간단한 인사와 함께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첫 테이스팅은, Nosiola 2020 & 2023 비교시음.
우선, Nosiola 2023은 정말 프레시한 배와 사과 과실에 은은한 흰꽃과 식초 한 방울, 그리고 살짝 꿉꿉 구수한 효모향이 인상적이었고 입에서는 살짝의 새초롬한 산미가 킥을 주면서 찰랑거리는 시냇물처럼 흘러 넘어갔다.
Nosiola 2020은 전체적으로 Nosiola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도 힘이 조금 더 좋은 듯했으며, 살짝 꿀향이 감돌면서 익어가기 시작한 상태였고, 마시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Elisabetta가 설명해 주길, Nosiola와 Manzoni Bianco는 좀 더 남쪽 지역의 Valley Slope에서 키우고, 와이너리 근처의 포도밭은 Valley Floor에 있어서 전부 Teroldego를 식재한다고 한다.
Kim : 한국에서 Nosiola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이것이 6-8개월간 껍질과 함께 발효 숙성한 와인이 맞는지 놀랐어요. 정말 색이 맑고 투명했거든요. 방금 전, 셀러에서 발효 중이던 Nosiola는 오렌지와인 색깔을 띠고 있던데, 어찌 이 와인이 그렇게 맑은 색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요?
Elisabetta : 어쩌면 필터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우린 하지 않아. 대신 발효나 숙성 중에 절대 휘젓기를 하지 않아. 그러면 알코올발효랑 말로락틱 발효가 끝나면 가스가 생기지 않아 껍질이 암포라의 뾰족한 바닥으로 모이고, 색은 맑아지지. 나도 숙성이 끝난 암포라를 볼 때마다 너무 놀라워. 마치 맑은 물을 보는 것 같아.
그다음으로는Pinot Grigio 2023와 Tutti Fruiti 2022를 함께 시음했다.
Foradori는 아쉽게도 Pinot Grigio 포도밭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Marco Devigili라는 같은 지역 비오디나미 생산자가 몸이 안 좋아지게 되면서 Pinot Grigio를 사 와서 만들기 시작했다. 'Fuoripista'라는 이름은 'Away from road'라는 뜻으로, 포도를 사와서 양조하는 예외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Nosiola와 마찬가지로 6-8개월간 껍질과 함께 암포라에서 발효숙성한다고 한다. 연한 핑크빛 구리색으로 약간의 새초롬한 식초 한 방울과 석류, 사과, 오렌지의 과실과 돌부스러기의 미네랄과 중상의 산도와 약간의 쌉싸름함으로 도톰한 텍스쳐가 만들어지며 넘어갔다.
Tutti Fruiti 또한 Trento 남쪽의 Monte Baldo 산기슭에서 버려진 포도밭을 구입하여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와인은 수출용이 아닌 내수용이라, 이날 맛본 이후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와인이기도 했다. 구입당시 포도밭은 여러 가지 품종이 섞여있었는데, 이를 필드블랜딩 된 상태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색은 정말 연한 루비색에 과즙이 있는 붉은 과실이 순수하고 화사하게 담겨있었다.
Kim : Tutti Fruiti 색이 정말 연하고 예쁘다. 블랜딩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Elisabetta : 그건 아무도 모르지. 다만 비앙코도 조금 포함되어 있어
이어서 Foradori의 대표 퀴베인 Teroldego Sgarzon 2021과 Morei 2021을 비교시음 하였다. 단 두 와인은 모두 'Cilindrica'라는 부제를 갖고 있었다. 이는 일반 Sgarzon과 Morei가 암포라에서 8개월간 껍질과 함께 발효숙성을 하는데, 여기서 껍질을 제거한 뒤 추가로 실린더 모양 암포라에서 12개월간 숙성을 하여 출시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Teroldego Sgarzon Cilindrica 2021과 Morei Cilindrica 2021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Sgarzon이 아주 약간 단단한 구조감을 보여줬다. Sgarzon은 모래토양, Morei는 자갈토양에서 수확한다고 한다. 둘 다 보라꽃, 약간 무른듯하게 잘 익은 검은 과실, 약간의 후추 스파이스, 광물성 미네랄, 약간의 흙이 감지되면서 산미가 정말 좋고 촘촘하고 실키한 탄닌이 텐션 있는 과실감을 보여줬다.
Kim : 정말 퓨어하면서 힘이 좋은 와인들이네요. 올해 초에 Sgarzon 2012를 열었는데, 여전히 신선하고 힘이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Teroldego는 어릴 때 깊은 과실의 농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레이어로 바뀌는 게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Elisabetta : 산도가 좋아서 숙성도 정말 잘되지. 10년, 20년?! 얼마든지! 심지어 2012년은 정말 힘들었던 해였는데도 잘 이겨냈네. 정말 재미있는 게, 저 먼 나라 한국에서 내 와인이 12년이나 지나서 소비되는 게 놀랍네.
Kim : 한국시장이 아직은 작아서 Foradori 와인을 구하기 정말 힘들어요. 아마 제가 오픈한 2012 빈티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거쳐서 제게 온걸 거예요.
Elisabetta : 안 그래도 요즘 그게 고민이야. 나는 와인 가격을 안 올리는데, 유통하는 사람들이 자꾸 가격을 올려. 5년 전에 50유로도 안 하는 가격으로 Sgarzon과 Morei를 팔던 레스토랑이 이제는 80유로 넘게 받고 있어. 이건 너무 비싸!!
Kim : 더 미친 일들이 요즘 Bourgogne에서 일어나고 있죠... ㅎㅎ
Elisabetta : 그건 이제 마실 수 없어...! 예전에는 부르고뉴의 와인들을 보고 참 놀랐었는데 말이야...
Kim : 와인 메이킹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메이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었나요?
Elisabetta : Alsace의 Marc Kreydenwiese... 그리고 Bourgogne의 그 누구더라... COVID19 때문인지 기억이 안 나네...!! 아님 그냥 늙은 건가? 오 마이갓!
마지막으로는 Granato 2003과 Granato 2021을 선보여주셨다. Granato는 석류라는 뜻으로 와인을 닮은 과일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Granato 2003을 따라주셨고, 가넷빛으로 영글어가는 와인을 코에 대는 순간 정말 많은 스윗 스파이스들이 훅 밀려왔다.
Kim : (약간 놀란 말투로) 뉴오크?!
Elisabetta :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땐 그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어. 근데 점점 평범한 와인만 만들어지는 거야. 그래서 뉴오크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
Kim : Teroldego가 뉴오크랑도 잘 어울리긴 하네요. 근데 순수한 스타일이 좀 더 좋은 것 같아요. 오크향이 진한 와인은 음식이랑 즐기기에도 불편하니깐요.
Elisabetta : 나도 이런 Nosiola나 Tutti Fruiti 같은 와인이 제일 좋아
Granato 2003. 물론 정말 맛있었다. 여전히 마른 뉘앙스로 심지를 잡고 있는 검은 과실과 영글어가는 스윗스파이스 그리고 가죽과 흙의 숙성향까지 삼박자의 조화가 훌륭했다. 다만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돈 많은 생산자가 떠오를 뿐, 돌로미띠의 시골풍경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반면 2021 빈티지는 퓨어한 과실에 아주 약간의 은은한 우디 함만 첨가되었더라. 2021 빈티지가 10-20년 뒤에 다양한 레이어 예쁜 모습으로 변모하여 Elisabetta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길 기대한다.
Elisabetta와는 2시간이 넘는 시음시간 동안 와인이야기는 절반만 하고, 한국의 암포라를 물어봐 옹기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정말 다양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는 나만의 추억으로 남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Elisabetta의 긴 이야기를 복기해 보면서, 정말 아름다운 와이너리에서 따뜻한 정을 나눠준 위대한 와인메이커 Elisabetta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lisabetta :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와인일을 빨리 시작했어. 그때 Alto Adige의 농부들은 전부 식재밀도를 높이고 많이 생산해서 협동조합에 포도를 팔았지. 그런데 나는 그게 이상했어. 그래서 비오디나미를 해보려고 한 거야. 그땐 모두 미쳤다고 이야기했어.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유기농, 비오디나미 한다고 노력하지.
Kim :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드는 비오디나미는 참 어려운 일인 건가 봐요.
Elisabetta : 절대 아니야! 생각만 바꾸면 되는 거야. 비오디나미는 정말 별거 아니야. 농부로서 포도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비오디나미, 최소개입주의의 전부야. 아무것도 안 하는 와인이 절대 아니지. 끊임없이 밭에서 일하고 세심하게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해. 그렇게 하다 보면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멋진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지.
Elisabetta의 말을 빌리자면, Biodynamic는 '농부로서 포도밭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라 요약해 볼 수 있겠다.
별과 달의 움직임도, 황을 전혀 넣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P.S. Foradori에서 떠나기 전, Elisabetta가 내게 꼭 가봤으면 하는 와이너리를 추천해 줬다. 참고가 될 수 있으니 간단히 이름만 소개해 보겠다. 실제로 필자도 계획에 없던 Valpolicella의 Monte dall'Ora를 Elisabetta에게 추천받았고 방문 하루 전 연락이 닿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Valpolicella] : Monte dall'Ora / Corte Sant'Alda
[Franciacorta] : 1701 Franciacorta / Div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