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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 Story] 와인잔의 변천사! 고대 그리스부터 리델(Riedel)까지

소비치 2023. 1. 2. 23:20
고대 그리스인의 잔빨

킬릭스(Kylix)를 들고있는 디오니소스

고대 그리스인을 그린 회화나 조각상을 본다면, 대부분 넓적한 사발모양 술잔을 들고 있다. 이런 모양의 잔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과거에는 양조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와인의 풍미가 단순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일이나 허브를 섞어 마셨다. 이런 식습관을 현대 대한민국 신입생환영회에서는 '사발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발모양의 술잔은 여러 가지 보충재료들을 섞어 마시기에 적합한 모양이다. 둘째, 당시 술은 커다란 항아리나 가죽주머니에 보관했으며 따라서 입구가 좁은 잔은 따르기 어려웠다. 마찬가지 이유로 위에서 따르기 편하도록 기둥(Stem)이 생긴 것이다. 

 

고급 유리잔의 탄생

Murano Glass. 15세기 경 제작

유리잔은 로마시대부터 종종 이용되어 왔으나,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최소 15세기부터다. 1400년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작은 섬 무라노(Murano)에서는 석영자갈을 이용하여 크리스탈로(Crystalo)라고 부르는 유리제품을 생산하였다. 당시 유럽 전역의 고급 유리 제품은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며, 와인잔이나 샹들리에등을 주로 제작하였다. 

 

유리 제작기술의 발달

 

무라노 스타일의 유리잔은 너무 쉽게 깨지는 결정적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는 1700년대 목재대신 석탄을 이용하며 유리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발달하였는데, 프랑스 샹파뉴지방에서 개발된 탄산기 있는 '샴페인'의 병내압력을 버텨줄 수 있는 튼튼한 유리병에 대한 수요의 급증과 맞물렸다. 18&19세기에 샴페인 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긴 것도 강도 높은 유리병의 보급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창문세 (Window Tax)와 얇은 유리잔

 

17세기말 명예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바닥난 국고를 채우기 위해 창문세를 도입한다. 크고 창문이 많은 집에 사는 부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한 취지였으나 인간들의 절세 욕구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다. 창문 흔적만 남기기도 하고, 창문을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이로 모자랐던지 영국에서는 18세기에 중반에 이르러서는 유리잔세(Glass Tax)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유리잔에 세금을 높게 매기는 방식인데, 유리가공업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점점 더 얇고 가볍게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반면 프랑스에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세금은 없었기에 샴페인 메이커들이 큰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Veuve Clicquot의 창시자 Madam Clicquot는 현대적 샴페인 메이킹의 핵심 르뮈아주 (Remuage) 기법을 발명하였다.

 

튤립형 와인잔의 탄생

 

Georg Riedel (좌) 와 그의 아들이자 현 Riedel사 CEO Maximillian Riedel (우)

1950년대 오스트리아의 유리메이커 '리델(Riedel)'의 소유주 클라우스 리델 (Claus Riedel)은 와인잔에 따라 와인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와인을 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잔을 디자인한다. '와인맛이 좋아지는 잔'으로 마케팅하며 유럽에서 성공신화를 달려나갔다. 또한 와인 스타일에 맞는 최적화된 디자인을 개발하며 현대적인 와인잔 분류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리델의 아이디어는 유럽에서만 환영받았으며, 당시 엄청난 소비력을 자랑하던 미국시장에서는 소외 받았다. 게오르그 리델(Georg Riedel)은 클라우스 리델의 아들로 리델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는 자신들의 제품이 소외받던 미국 와인시장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 (Robert Mondavi)를 찾아가 자신들의 와인잔이 와인맛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로버트 몬다비는 그를 흔한 상술가로 생각하였다. 

 

"내 50년이 넘는 와인 메이킹 경력동안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처음듣네!"

"In 50 years of winemaking I have not heard such nonsense"

 

로버트 몬다비가 게오르그 리델의 와인잔모양과 와인맛에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을 가로자르며 실제 한 말이다. 로버트 몬다비는 자신이 평소 즐겨쓰던 와인잔과 리델의 와인잔을 비교하는 테이스팅을 한 뒤, 자신의 모든 와인잔을 버리고 리델잔으로 교체했다는 일화는 와인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일화로 내려온다. 

 

잔에 집착하지 말고 이 순간, 이 와인을 즐겨라!

 

와인잔은 사실 와인을 담아마시는 매체에 불과하다. 사발에 마시던 고급크리스탈 잔에 마시던 나만 즐거우면 된다. 그래도 이런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면 한잔한잔에 기억들을 다채롭게 조미(調味)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신 모두가 즐거운 와인생활이 하길 바라며...

Sa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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